창업 10차례 실패 끝에...지리산 자락에서 만든 '크몽'이 터졌다[긱스]

입력 2022-07-22 08:38   수정 2022-07-22 16:47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긱워커 1000만명 시대입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디지털 노마드' '원격 근무' 등의 용어는 일상이 됐습니다. 일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들이 자유롭게 재능을 판매하는 크몽은 2010년대 초반 일찌감치 이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한경 긱스(Geeks)가 크몽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프리랜서 마켓 플랫폼 크몽은 11년차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 치고는 업력이 꽤 오래됐다. 그 사이 숨고, 탈잉 같은 후발 주자들도 생겨났지만 디자인이나 통번역, 프로그래밍, 영상 등 전문성을 가진 '비즈니스' 영역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크몽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크몽의 경쟁력은 숫자로 봐도 알 수 있다. 취급하는 분야만 500개다. 누적 회원 수는 200만 명, 완료된 거래 건수는 300만 건이다. 의뢰인 만족도도 98.6%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설립 이후 누적 투자금은 450억원을 넘어섰는데, 지난해 312억원 규모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며 컴퍼니케이파트너스, 프리미어파트너스, 인터베스트, 미래에셋벤처투자 등 국내 내로라하는 벤처캐피털(VC)의 낙점을 받았다. 향후 2~3년 내 기업공개(IPO)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긱스가 만난 박현호 크몽 대표(사진)는 진짜 '긱(Geek, 괴짜)' 같았다. 창업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 열 번 넘어져도 열한 번째 오뚜기처럼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지리산 근처 경남 진주 출신이다. 친근한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왔다.

"나는 긱(Geek)... 컴퓨터에 빠져 창업의 길로"
박 대표는 스스로를 괴짜라고 칭했다. 어린 시절 내성적이었던 그는 혼자 노는 걸 좋아했다. 6살배기던 1980년대 중반 일찌감치 컴퓨터를 접했다. 집 근처에 살던 사촌형이 애플 컴퓨터를 샀다. 친구들이 오락실에 가서 놀 때도 박 대표는 집에서 매일같이 컴퓨터를 만지며 지냈다. 그는 "고등학생 때까지 커서 뭐가 될지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빌 게이츠의 자서전을 읽었다. 세계 최고 부자가 컴퓨터광인 것도 모자라 프로그래밍을 통해 회사를 만들어 큰 돈을 벌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때부터 막연히 '뭔가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꼭 창업을 의미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대학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박 대표는 단국대 컴공과 97학번이다. 신입생 시절은 인터넷이 막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했지만 이론만 주구장창 파다 보니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진짜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바이 게임'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었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판매하는 게임 패키지를 살 수 있게 했다. 재미 삼아 만든 이 사이트는 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서 꽤 입소문을 탔다. 그는 "이 때 창업가의 꿈을 조금 더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교 2학년 땐 PC방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PC방이 우후죽순 생기던 1990년대 후반에 적합한 아이템이었다. 수백 곳의 PC방을 돌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홍보했지만 수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고민에 빠진 박 대표는 다음 아이템으로 전자기기 쇼핑몰인 '라밤바'를 창업했다. 닷컴 열풍 등으로 IT기기 수요가 늘어나자 매출도 월 7000만원 수준까지 성장했다. 강남 테헤란로에 사무실도 차리고, 물류센터도 만들었다. 그러다 '닷컴버블'이 터지며 와르르 무너졌다.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모델인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투자를 받지도 못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또다른 창업 아이템들을 고민했다. 이종 격투기 스트리밍 서비스를 만들기도 하고, 온라인 게임 아이템 거래 사이트를 개설하기도 했다.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남은건 3억원의 빚이었다. 박 대표는 "아이템 자체는 시대적 흐름을 타 나쁘지 않았다"면서도 "꾸준히 성장하기 위한 사업모델을 만들지 못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빚 떠안고 귀향... 우연히 터진 크몽
빚이 쌓이고 심적으로도 힘들어지자 진주로 귀향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심신을 다스렸다. 어머니가 있어 숙식이 해결되는 점도 다행스러웠다. 개발자로서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는 "사람들이 필요하면서도 재밌는 게 뭘까 고민을 거듭했다"며 "이 때 혼자서 개인 프로젝트들을 많이 생각해냈다"고 했다.

그렇게 탄생한 사업 중 하나가 2011년 크몽의 초기 모델이다. 5000원에 재능을 사고 파는 방식이다. 캐리커처 그려주기부터 연애 상담, 심지어 직장상사 욕해주기까지 '말랑말랑'한 요소들을 넣었다. 괴짜들이 모인 사이트라는 게 박 대표의 말이다. 그는 "원래 이스라엘의 '파이버(Fiverr)'라는 회사를 벤치마킹했는데, 이 역시 5달러에 재능을 파는 형식"이라며 "트래픽이 급증하는 걸 보고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초반엔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느낌이 강했다. 5000원 중 1000원이 수수료 수입으로 유지되는 구조라,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돈이 없어 테스트도 거치지 않은 채 2주 만에 '후다닥' 사이트를 오픈했다. 본사도 여전히 진주에 있었다. 박 대표는 "이 정도면 한 달에 100만원 정도는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시골에 집도 있으니 100만원 정도만 벌어도 입에 풀칠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비즈니스가 된 건 2012~2013년 정도다.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이 국민 SNS가 된 시기였다. 일부 미대생들이 5000원을 받고 캐리커처를 그려주던 게 입소문을 탔다. 너도나도 프로필 사진을 캐리커처로 장식했다. 이 때부터 디자이너들이 크몽을 수입원으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5000원 제한'도 곧 풀었고. 2014년엔 사무실도 서울로 옮겼다. 2015년엔 동문파트너스로부터 시드(초기) 투자도 유치했다.

긱(Gig) 이코노미 바람 타고 승승장구
"유튜브 알고리즘에 선택받는 신박한 썸네일 만들어드립니다. 가격은 9000원."
"9년차 미술 경력 미대생이 고급스러운 PPT 만들어드립니다. 가격은 1만원."

크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게시물들이다. 크몽이 추구하는 모델은 SaaP(Service As A Product)로 요약된다. '전문성'이라는 무형의 서비스를 상품화해서 거래하는 방식이다. 장점은 다양한 상품들을 투명하게 비교할 수 있는 데 있다. 서비스 공급자 입장에서도 천차만별의 요소들을 정해진 양식에 따라 설정만 하면 돼 편리하다는 설명이다.

이를테면 전문가에게 번역을 맡기고 싶을 땐 마감일, 번역 단어 수, 수정 횟수 등 다양한 요소들을 정해진 양식에 맞춰 여러 선택지와 함께 비교할 수 있다. 또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싶을 땐 자막, 더빙 유무, 배경음악, 촬영 시간, 화질 등으로 구성된 양식을 보며 의뢰인과 전문가 모두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다.

박 대표는 "프리랜서 마켓에서는 세분화되고 규격화된 양식이 없으면 프로젝트가 시작도 되기 전에 어그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난관을 해결할 수 있게끔 만든 것이 이 시장을 선도하게 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크몽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더 성장했다. 긱(Gig) 이코노미가 각광받으면서다. 지금은 긱워커 전성시대고, 이 흐름은 계속된다는 게 크몽이 그리는 미래다. 박 대표는 "직장인들의 80%가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거나 준비 중일 정도로 'n잡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며 "팬데믹 기간 동안 크몽 내 등록된 프리랜서 수가 2배 이상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점도 크몽을 성장시킨 요인 중 하나다. 비대면 수요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디지털 인력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졌다. 박 대표는 "개인과 기업 모두 원격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익숙해졌다"며 "예전에는 오프라인으로 하던 마케팅이나 디자인 같은 IT 업무도 비대면으로 이뤄지면서 디지털 인력 수요가 폭증한 덕분에 회사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일하는 방식의 기준은 기존의 직업(Job) 형태에서 일종의 프로젝트(Work) 형태로 바뀔 것이라는 게 박 대표의 예상이다. 굳이 회사에 종속되지 않더라도 이리저리 프로젝트 단위로 옮겨다니면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크몽에서는 이미 이런 디지털 노마드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 27년차 개발자는 크몽 플랫폼에서 일하면서도 강원 양양에서 유유히 서핑을 즐기며 지내고 있다. 국내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59개 나라의 전문가가 등록돼 있다. 아르메니아나 에티오피아, 파라과이에도 있다. 한국에서 논술 강사로 일하다 노르웨이로 이주한 뒤 크몽에서 글쓰기를 판매하는 전문가는 이미 평범한 사례가 됐다.

그런 점에서 크몽은 '휴먼 클라우드'를 꿈꾸고 있다. 박 대표는 "과거에는 기업들의 서버를 사옥 어딘가에 구축된 전산실에서 관리했지만, 지금은 모두 클라우드 형태로 바뀌고 있다"며 "인력 역시 비용을 내고 그때그때 '사용' 하는 개념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노동자 입장에서도 나의 전문성을 단일 클라이언트가 아닌 여러 기업에 '판매하는' 방식이 각광받게 될 것"이라며 "지금의 100명 규모 회사는 앞으로는 20명만 상주하고 80명은 프리랜서로 구성되는 세상이 온다"고 덧붙였다.

즐겁게 일하고, 서두르지 말라는 말
크몽 직원들을 위한 사내 슬로건은 '워크 해피(Work Happy)'다. 박 대표는 일이 즐거워야 성과가 극대화된다고 믿는다. 채용 면접을 볼 때도 이런 점을 가장 유심히 본다고 했다. 개발자를 뽑을 땐 개발이 정말 재밌어서 하는건지, 아니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인지를 눈여겨 본다. 10년 넘게 연쇄 창업을 거치며 실패해 본 뒤 얻은 교훈이다.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창업이 '너무 좋아서'였다. 그 덕에 크몽엔 취미가 '개발'이라 주말에 쉬면서 코딩을 하는 개발자도 있다.

물론 130여 명의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하게 해주기 위해 지원사격도 한다. 우선 입사하면 크몽에서 사용할 수 있는 35만원 상당의 캐시를 준다. 프리랜서 플랫폼 운영사답게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다. 또 일종의 사내 동호회 격인 '길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1시간씩 업무 시간을 이용해 진행한다. 코딩부터 다큐멘터리 시청, 게임, 커피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회사에서 n잡을 적극 장려하는 게 특징이다. 직원들의 절반가량이 이미 크몽을 통해 재능을 판매하고 있다. 개발 직군 직원 한명은 크몽을 통한 누적 수익이 1억원을 넘겼다는 후문이다. 특히 퇴사하는 직원에겐 50만 캐시를 준다. 직원에서 다시 고객이 된 크몽 멤버들을 위한 선물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박 대표는 예비 창업가들에게 "조급함을 경계하라"고 조언했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창업했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이 창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친구들 사이에선 일찌감치 앞서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한 차례 실패를 겪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실패를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20대의 박 대표는 '6개월'에 집착했다. 어떻게 하면 6개월 안에 반전을 이뤄내 '대박'을 칠까만 고민했다. 그는 "초기 아이템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는데, 막상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그때마다 계속 아이템을 이리저리 바꾸다보니 문제점은 개선되지 못하고 무너지기만 했다"고 회상했다.

크몽을 세상에 선보일 때까지 법인 설립만 네 번 했다. 자잘한 아이템들을 실행에 옮긴 것을 포함하면 열 차례 정도 창업의 문을 두드렸다. 그야말로 10전 11기인 셈이다. 조급함을 내려놓자 비로소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박 대표는 "실패가 거듭되자 어머니는 '지금이라도 취업을 하라'고 하셨지만, 철없던 나는 '열 번 시도해보면 한 번 정도는 되지 않겠나'는 생각으로 버텼다"며 "어쩌면 앞뒤 상황을 가리지 않고 창작을 즐기는 괴짜같은 면이 결국 나를 성공으로 이끈 것 같다"며 웃었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참, 한가지 더

VC 러브콜 받는 프리랜서 플랫폼들

긱 이코노미 바람을 타고 일하는 방식이 변하자 크몽과 같은 프리랜서 마켓 플랫폼들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투자 라운드 한 번에 수백억원대 자금을 조달하는 건 예삿일이 됐다.

'숨고' 운영사 브레이브모바일은 지난해 320억원 규모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다. IMM인베스트먼트, TBT(티비티),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위벤처스 등이 이 회사에 베팅했다. 누적 투자금액은 500억원을 넘겼다. 이사나 청소, 인테리어, 반려동물 등의 분야를 취급한다.

탈잉 역시 지난해 시리즈B 투자를 받았다. 메가스터디, 신한벤처투자, DSC인베스트먼트 등이 147억원을 투자했다. 댄스, 제빵, 드로잉, 꽃꽂이 등 취미 영역부터, 엑셀, 포토샵, 코딩, 마케팅 등의 분야를 다루고 있다.

그밖에도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플랫폼도 급성장 중이다. 이를테면 홈클리닝 서비스 '청소연구소' 운영사 생활연구소는 지난해 22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유아 돌봄 서비스를 내놓은 자란다는 지난 4월 31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비슷하게 육아 플랫폼을 선보인 째깍악어 역시 누적 투자금 150억원을 기록 중이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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